21세기를 향한 과학의 동향: 물리학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박형규

17세기 후반 뉴턴이 등장한 이후, 물리학은 수학적으로 엄밀한 과학으로서 기초과학의 주춧돌이 되어 왔다. 뉴턴의 역학 이론은 당시까지 무질서해 보이던 많은 자연 현상들을 몇 개의 아주 기초적인 법칙들로부터 설명할 수 있었으며, 자연을 하나의 커다란 기계장치로 보는 기계론적 사고방식을 창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정립된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은 인간의 기존 사고양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으며, 또한 이에 기초를 둔 산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간의 생활양식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물리학에서의 위대한 발견들은 물질문명 뿐만 아니라 정신문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21세기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물리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예측은 매우 어려우며 또한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편향적이 될 수 있겠지만, 현대 물리학이 지금 커다란 벽에 부딪쳐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시적인 입자들의 상호작용과 지배법칙을 이해하려 했던 입자물리학은 초미시적인 영역까지 발전되었지만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구를 필요로 하게되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거시적인 물질이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응집물리학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체계가 나타내는 다양한 현상들을 보편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통일된 틀걸이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혼돈 이론이나 복잡성 이론들은 미시적인 물리법칙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법칙들만으로는 거시적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고 있다. 초미시적인 영역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과 거시적인 영역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이 모두 가파른 절벽에 다가서 있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급속도로 팽창한 물리학 분야는 세분화되기 시작했으며, 또한 전문화되어 다른 기초 과학자들은 물론 같은 물리학자들 사이에도 심도있는 대화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결집되지 못하고 흩어지게 되었다. 21세기에는 세분화된 분야들의 뿌리를 다시 점검해 보고 공통된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경주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간사회에 이미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도화된 물질문명은 물리학자들이 특수한 산업분야에 직접 응용될 수 있는 보다 실용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도록 요구할 것이다. 이미 순수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은 전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응용과학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다가올 것이 자명하다. 물리학자들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커다란 벽을 뛰어넘지 않는한 기초과학의 위기는 점점 가시화될지 모른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물리학이 도약을 해야하는 시기이다. 근본적인 자연법칙들과 현실세계에 직접 도움이 되는 응용기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야 하는 도전의 시대이다. 따라서 기존 물리학자들과 자연을 탐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21세기가 또 하나의 중요한 도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나라의 물리학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나라 현대 물리학의 역사는 불과 반세기도 채 되지 못했지만, 질적이나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물론 과학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나 과학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인 일본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직 너무 이를 것이다. 하지만 몇몇 세부분야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국제적인 교류는 최근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 어느 분야 물리학 논문 발표회에 가더라도 많은 한국 물리학자들이 활발히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연구 업적들도 세계적으로 서서히 인정받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의 물리학자들은 대부분 매우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몇몇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나 연구소에 필요한 도서나 논문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며, 연구시설도 취약하다. 더욱이 기초과학 도약의 발판이 될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자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산업계에서는 당장 필요한 기술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선호하고 있으며, 기초연구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기초연구에 투자를 많이 해온 나라들이 지금 최고의 산업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현실만을 고려하여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이는 기초과학자들의 저변확대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우수한 연구자들이 대학원생 등 연구보조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 속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위를 받은 많은 젊은 물리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생계문제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과학의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21세기의 과학 선진국으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아주 효율적인 인력 운용과 후진양성에 매진하더라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 속에서 자리매김을 하기 힘겨운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연구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한 나라의 기초과학의 수준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또하나의 잣대이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 뿐만 아니라 문화 수준을 더욱 고차원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육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미래지향적인 문화와 기초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고른 발전이 또한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 입안자들이 소수의 재벌을 육성함으로서 경제발전을 꾀하여 왔지만, 결국 중소기업들이 산업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고 이제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온 것과 같은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특히 기초과학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또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인재들을 배출함으로서 전체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몇몇 곳에 집중함으로서 우리나라 전체 기초과학의 수준을 급속히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우수한 기초과학자들에 대한 효율적인 인력 운용과 재정 지원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되어야지만 21세기의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수준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